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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세 위안부 할머니 눈감은 다음날, 법원은 배상 판결 확정... 일본은 '나 몰라라' 외면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우리나라 법원이 세 번째로 인정한 판결이 15일 확정됐다. 이는 건강 악화로 지난 11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영결식이 치러진 지 하루 만에 나온 결과다. 일본 정부는 항소 기한인 전날까지 1심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청주지법 민사 7단독 이효두 판사는 지난달 25일 고(故) 길갑순 할머니의 아들 김영만(69)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청구액 2억원 전부를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다. 다만 길 할머니의 상속인이 2명인 점을 고려해 일본 정부가 절반인 1억원을 김씨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924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난 길 할머니는 1941년 17세의 나이에 일본 나가사키 섬으로 끌려가 4년 가까이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다. 그는 마을마다 처녀 1명을 강제로 징발하는 '처녀공출'을 피하기 위해 호적상 부부로 위장했으나 결국 발각돼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 길 할머니는 "일본군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등을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일본은 주권 국가로서 타국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 원칙을 들어 그동안 국내 법원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재판에 모두 불응해왔다. 이번 재판에서도 소장 송달을 거부한 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재판부는 공시 송달을 통해 재판 절차를 진행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국제관습법에 의하더라도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 규범을 위반한 경우에는 국가면제의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며 우리나라에 재판관할권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 판사는 "국가면제 이론은 국제질서의 변동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있어 항구적인 가치로 보기 어렵고, 유엔협약 등 보편적 국제규범에서도 일정한 경우 국가에 대한 재판권을 면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3번째지만, 김씨가 실제로 일본 정부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1차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2021년 4월 우리 법원에 일본 정부의 재산 명시를 신청했으나 각하 처분됐다. 당시 일본 측은 법원의 재산목록 공개 및 재판 출석 명령에 불응했고, 결국 재판부는 "공시송달을 통하지 않고선 송달할 방법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민사집행법상 재산 명시 절차는 공시송달로 진행할 수 없어, 일본 측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한 압류 등을 통한 배상금 지급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한편, 이번 판결 확정 하루 전인 14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영결식이 경기 용인시 쉴낙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유족, 나눔의집 관계자, 경기도청 공무원 등 4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나눔의 집에서 거주해 온 이 할머니는 건강 문제로 지난해 3월부터 성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다가 지난 11일 오후 8시 5분께 향년 97세로 생을 마감했다. 장지는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동산이다.